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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흑돼지에 이렇게 많은 사연이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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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 셰프의 제주 음식여행(19)- 제주 흑돼지

 

 

서귀포 시내를 지나다 보면 돼지고기를 주 재료로 하는 음식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제주도만큼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한 수 위다.
 
 
제주 토박이들에게 돼지는 오랫동안 생활에 깊숙이 깃들어 있었고 그래서 애정이 깊다.
 
 
표선리에 자리잡은 제주민속촌이나 성읍민속마을, 남원의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에 가면 제주 흑돼지 일명 ‘똥돼지’의 과거 생활 환경을 볼 수 있다. 제주어로는 ‘돗괴기’나 ‘검은 도새기’라고 불리는데 ‘돗’은 돼지이며 ‘괴기’는 고기의 옛말이다. 가축 우리와 같은 공간을 까만 돌로 막아 돌담 위에 재래식 화장실 비슷하게 만든 시설이 ‘돗통시’라고 불린다. 제주의 돗통시는 화장실과 돼지 축사를 이어 인분을 처리하고 농사 지을 비료를 확보하는 공간이었다. 오랫동안 제주의 삶과 같이 했다고 한다.
 
 
 
 
돗통시 변소는 예전에는 지붕이 없는 개방된 형태여서 악취 문제로 부엌과 반대편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돼지 하면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데다 잘 안 씻고 지저분한 가축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성읍이 고향인 한 지인은 돼지가 지저분한 것을 모두 처리해 주기 때문에 매우 위생적인 가축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아쉽게도 3~4년 전 발생한 구제역 영향으로 일반 가정에서 돼지를 사육하거나 돗통시 흑돼지의 실생활을 볼 수 있는 환경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오일장에서 어린 돼지를 사서 일 년 정도 키워 내다 팔았던 기억은 토박이들에게는 오래 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흑돼지가 제주도 고유의 특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 때문에 부담스럽다. 관광객의 수요가 몰리는 여름 7~8월의 경우 평소 보다 10~20% 더 비싸게 거래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백돼지의 경우 6~7개월 정도 사육하면 도축하여 판매할 수 있는데 비해 흑돼지를 비슷한 중량까지 키우려면 대략 1년 이상의 사육 기간이 필요해 두 배 가까운 사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또 삼겹살 등 일부 부위만 찾는 국내의 소비 성향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우의 경우 안심, 등심, 채끝(소위 안등채 3인방)과 갈비의 소비가 많다. 특히, 꽃등심이 아니면 한우를 먹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 때문에 국내의 꽃등심 가격은 천정부지이고 양식당의 경우 스테이크 용도로 안심을 많이 찾는다. 돼지고기도 삼겹살로 소비가 몰리며 가격이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다. 제주도에서는 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오겹살이 삼겹살보다 인기가 많다. 제주 흑돼지는 백돼지보다는 거의 두 배, 수입산 돼지 보다는 네 배의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실제로 식당에서 흑돼지와 백돼지를 함께 파는 경우 흑돼지를 백돼지보다 대략 20% 정도 비싸게 판매하는데 업주들은 원가를 고려하면 그리 많은 이윤을 못 낸다고 하소연이다.
 
 
오겹살 외에 목살이나 가브리살, 갈매기살, 항정살과 같은 특수 부위도 나름 독특한 맛과 개성으로 인기가 많다. 제주시 연동에 자리잡은 한 식당은 가브리살과 청국장을 함께 파는데 육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요즈음에는 흑돼지 돈가스, 흑돼지 탕수육, 흑돼지 두루치기처럼 구이와 다른 조리 법을 활용한 음식들도 많다. 다만 돈가스나 탕수육에 사용되는 등심이나 두루치기에 사용되는 전지(앞다리 살)는 흑돼지나 백돼지의 도매 가격 차이가 얼마 없으니 메뉴 명과 가격을 혼돈하지 않았으면 한다. 흑돼지의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 까만 털을 다 제거하지 않은 경우는 오히려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 사육 기간이 길어 비계 부분이 많은 흑돼지 오겹살의 특유의 고소한 향이나 기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돈을 더 들이는 것 보다는 백돼지의 여러 부위를 다양하게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제주의 말고기처럼 제주 흑돼지는 특유의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하여 오랜 역사성과 차별성 갖고 있다. 작년 봄에는 제주 재래 돼지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흑돼지는 개량종이니 식용으로 문제의 소지는 없다.
 
 
제주 흑돼지는 바다 생활이 많은 토박이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중요하며 제주의 생활, 민속,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혼례나 제사, 상례, 마을 포제 등에서도 중요한 메뉴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고기가 필요한 사람들끼리 모여 돼지를 잡아 나눠 가지는 ‘추렴’을 했다고 한다. 필요한 고기를 부위별로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내장을 제외한 12부위를 구분하여 용도에 따라 나누는데 여기서 부위별로 여러 가지 형태의 돼지고기 요리법이 나왔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사라져 가는 제주 흑돼지 음식에 대한 고증과 현대에 맞게 새 단장을 하는 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뜻 깊고, 반가운 움직임이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출처 : 한국일보 (2016.10.14) http://www.hankookilbo.com/v/56f259a5017040569ad058e7259c0b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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